겨울엔 역시 군고구마
겨울엔 역시 군고구마
겨울마다 할머니댁에서 친척언니, 동생들과 하는 것이 불씨가 남아있는 아궁이 속에 고구마를 묻어두는 것 이었다. 밖에 나가 한 차례 고무줄을 뛰고 들어와 불쏘시개로 고구마를 쿡쿡 찔러본다. 딱딱하면 좀 더 두고, 찌르는대로 부드럽게 들어가면 데굴데굴 굴려서 밖으로 빼낸다. 이미 겉이 까맣게 탄 고구마를 호호불며 껍질을 벗겨내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노오란 속살이 어찌나 반갑던지. 살얼음 낀 동치미라도 있으면 고구마를 한 없이 먹어도 질리는 줄을 몰랐다. 지금은 아궁이도 없고 자연산 살얼음 낀 동치미도 없지만 고구마는 여전히 친근한 간식거리다. 가끔씩은 사과처럼 껍질을 깎아 깨물어 먹기도 하고 냄비에 보슬보슬 쪄서도 먹는다. 군고구마가 그리울땐 오븐에 구워서도 먹는데 어떻게 해서 먹든 아궁이에 구워먹는 그 맛만 못 한 것 같다. 물론 굽는 재미가 맛을 더해주기도 했겠지만 아궁이의 군고구마가 더 맛있었던 이유는 있다.
100g정도하는 고구마 한 개에는 23g의 당질이 들어 있다. 때문에 고구마를 생으로 먹으면 적당한 단맛이 난다. 이런 고구마를 구우면 단맛은 배가 된다. 고구마를 굽는동안 효소가 녹말을 당질화 시키기 때문이다. 이 때 굽는 온도를 60도 정도로 유지시킬 수 있다면 더 달콤한 고구마를 맛 볼 수 있다. 효소의 작용이 더 활발해져서 녹말분해가 잘 되기 때문에 그 만큼 단맛도 더 많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씨가 남아 있는 아궁이에 구워먹는 고구마가 맛있는 비결이다. 더불어 굽는 동안 고구마의 수분이 적절하게 증발하여 촉촉함도 유지된다.
고구마의 원산지는 멕시코와 콜롬비아 등의 중남미 지역이다. 아시아에 전해진 것은 1521년.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하며 전파했는데 중국에는 16세기에 명나라의 진진룡이라는 사람이 들여왔다. 장사하러 필리핀에 갔던 그는 사람들이 주먹만 한 뿌리를 날 것 또는 익혀서 먹는 것을 보고 기다란 고구마 넝쿨 모종을 밧줄에 매서 바닷물에 잠기게 한 상태로 일주일간 항해하여 중국 복건성에 들여왔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영조때 일본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일본 대마도를 통해 종자를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알칼리성 식품인 고구마의 주성분은 당질 이지만 각종 비타민도 풍부하다. 그 중에서도 암 유발물질인 과산화 지질의 생성을 억제하는 비타민E와 멜라닌 색소를 억제하고 주근깨와 기미 예방에 좋은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다. 고구마를 잘랐을 때 나오는 하얀 유액은 수지 배당체인 얄라핀이라는 성분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에 좋고 장관 벽과의 접촉시간을 단축시켜 대장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알려진 베타카로틴(betacarotene)이 고구마100g에 113ug(1mg=1000ug) 들어 있어 중간 크기의 고구마 한 개면 하루에 필요한 베타카로틴을 충족시킬 수 있다. 껍질 째 먹으면 더욱 좋다. 껍질에는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암과 노화를 예방해 주는 보라색의 플라보노이드(flavonoid)성분이 들어 있다. 전분 분해 효소도 들어 있어 껍질을 벗기고 먹을 때 보다 소화도 잘 되고 속 쓰림과 가스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
가장 서민적인 먹거리였던 것이 건강식품의 반열에 오를만큼 출세를 했으니 고구마는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고 있겠다. 고구마가 건강에 좋다고 하니 고구마로 빵도 만들고 피자도 만들고 과자도 만들지만 다이어트 중이라면 그냥 구운고구마를 먹을 것을 추천한다. 또 감자보다 당지수(GI)는 낮지만 열량(100g당 감자66kcal, 고구마128kcal)은 높기 때문에 과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