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경남도지사
▼ 김태호 경남도지사
평정심은 완벽한 준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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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군수와 최연소 도지사라는 타이틀로 알려지다 보니,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리고 그다지 좋은 배경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경력을 쌓을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거창의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새벽이면 네 남매를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어머님 슬하에서, 산하(山河)를 놀이터 삼아 개구쟁이로만 자랐다.
시골에서 부의 척도는 논밭의 크기였기 때문에, 큰 농사를 짓는 부농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 정도가 있었지 싶다. 자연스럽게 거창농업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읍내’라는 큰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것저것 폭넓게 읽은 독서로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농사를 짓더라도 ‘알고’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난생 처음 공부에 매달렸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겨울, 서울대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자신감과 패기로 서울로 향했다.
‘등고자비(登高自卑)’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작은 시골도시가 전세계였고 우주였던 시골 소년에게 서울이 가져다준 문화 충격은 대단했다. 시골집에서는 학비 외에는 기대할 수 없었기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그렇게 박사과정을 마치고, 시간강사로 재미를 붙여갈 즈음에 국회의원 보좌관직을 제안받았고, 고민 끝에 정치인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제대로 된 정치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던 1995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 참여하여, 사회정책실장을 맡아 한국정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1997년 한나라당의 대선 패배가 내 인생의 중요한 고비가 됐다. 여의도연구소에서의 고민과 대선 패배의 충격이 나를 바꾼 것이다. 길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고향으로 내려왔다. 등고자비(登高自卑·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랄까, 그런 심정이었다.
“젊은 사람인데, 됐네”라는 주위 어르신들의 과분한 인정으로 1998년 38세의 나이로 도의원에 당선되고, 4년 후에는 거창군수가 됐다. 그리고 2년 후에 경남도지사 보궐선거가 있었다. 너무 젊고, 또 지금 실패한다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다며, 나를 걱정해주는 분들도 계셨지만,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대통령 탄핵사태의 여파로 당이 무척 힘들 때였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당에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경선에 참여했다. 한나라당 당원 동지들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믿음을 주셨기에 공천을 받고, 도지사로 당선될 수 있었다. 2004년 도지사로 재선되고, 도민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겸손한 도전
젊은 도지사의 성공 비결이 뭘까? 지금까지 나를 키운 것은 주위의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인 듯하다. 아직도 9시 뉴스가 끝나면 고향에서 전화로 걱정해주시는 아버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정화수를 올리는 어머니, 어린 시절 자연에서 배웠던 호연지기, 정치를 시작하면서 어느 덧 나의 좌우명이 되어버린 ‘겸손과 도전’, 무신불립(無信不立·신뢰가 없으면 바로설 수 없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준비가 나를 이끌어가는 힘인 듯하다.
운은 어떨까? 마키아벨리의 견해로 대신하고자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지와 결단력, 능력(virtu) 등에 더하여 운(fortuna)도 중요하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보다 과감하고 힘 있게 움직이는 사람의 편에 서게 마련이다. 운명이라는 위험한 강에 대비해서 제방을 쌓고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운명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읽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에게 운명의 여신은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