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관지화(越官之禍)
[데일리안 김영인 논설위원]한비자에 나오는 얘기다. 한나라 임금이 어느 날 술을 지나치게 마셨다. 취한 나머지 집무실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였다. 옆에 있던 신하가 걱정이 되었다. 침실로 옮기든지, 아니면 옷이라도 덮어줘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신하는 그렇지만 임금의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전관·典冠)였다. 옷을 담당하는 관리(전의·典衣)는 따로 있었다. 소관업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쌀쌀한 날씨에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잠을 자고 있는 임금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임금의 옷을 가지고 와서 덮어줬다.
임금이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옷을 덮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덮어줬을 것이다. 덕분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고맙게 생각했다. 주위에 있는 신하에게 옷을 덮어준 사람이 누군가 물었다. 모자 담당인 '전관'이 덮어준 것이라는 보고였다.
임금은 모자 담당인 '전관'과 옷 담당인 '전의'를 불러들였다. '전의'는 사색이 되었다. 옷 담당이면서도 임금의 옷을 챙기지 못하고 다른 관리가 가져가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한바탕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다.
반면 '전관'은 의기양양했다. 비록 담당 관리는 아니었지만, 임금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옷을 가져와서 덮어줬기 때문이었다. '전의'는 임금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임금의 지시는 뜻밖이었다. '전관'과 '전의'를 모두 처벌하라고 한 것이다. 이유는 이랬다. '전의'는 임금의 옷을 담당하는 것이 임무다. 그런데도 다른 관리가 가져가도록 방치했다. 임무를 소홀히 했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전관'은 임금의 모자만 담당하면 된다. 그런데도 감히 임무를 넘어서 옷까지 멋대로 가져갔다. 그러니 '월관(越官)을 한 것이다. 오늘날 용어로는 '월권(越權)'이다. 따라서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임금은 관리들이 남의 업무까지 침범해서 질서가 흔들리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감기에 걸리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 '전관'과 '전의'를 모두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월관지화(越官之禍)'의 고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