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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에 얽힌 추억하나

항상 좋아요. 2010. 1. 26. 06:36

호빵에 얽힌 추억 하나 길을 가다 우연히 편의점 창 너머로 뽀얀 김을 뿜으며 따끈따끈한 호빵을 꺼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즈음이야 먹거리가 풍족해 호빵을 가끔 별미로 먹겠지만 저 어릴 적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에는 날씨가 쌀쌀한 날 따끈한 팥호빵 하나 먹으면 그 어떤 음식보다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호빵'하면 어릴 적 호빵과 어머님에 얽힌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그 이름이 저에게 더 따스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제 나이 이제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으니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네요. 먹을 것도 풍족하지않던 제 어린 시절 아버님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저희 집은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었습니다. 먹고 돌아서면 금방 배가 꺼지는 보리밥 한 공기도 배부르게 먹지못할 정도였으니 밥 이외의 다른 먹거리는 기대하기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때의 겨울은 또 왜 그리 추운지 아마 없는 사람에게는 추위마저도 더 매섭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가방을 던져놓고 흙먼지 뽀얗게 날리며 하루종일 동네를 뛰어다녔습니다. 노는 것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놀다 보면 그나마 추위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서산에 기울어 집에 돌아가야 할 때면 어김없이 배고픔을 느끼곤 했죠. 그 날도 친구들과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 저녁때가 되어 집으로 향하는데 동네 구멍가게 앞에 영식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둥그런 호빵통 옆에서 방금 꺼낸 듯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끈뜨끈한 호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달음에 영식이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영식아!" "와!" "그 호빵 맛있나?" "응, 무지 맛있다." "좀 주라..." "싫다! 내 묵을 것도 없다." "글지말고 맛만 보게 쬐금만 주라." 지금 생각하면 치졸하게 보일 정도지만 그때는 호빵이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간곡히 사정하는 나에게 영식이는 큰 인심을 베풀듯이 호빵 밑에 붙어있는 둥그런 종이를 내밀더군요. "자, 이거라도 줄까? 싫으면 말고!" "아이다, 그거라도 주라." 호빵을 먹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호빵 밑의 종이를 떼어내면 깨끗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빵이 조금 붙어있곤 하거든요. 영식이에게 건네받은 종이에 붙은 호빵을 조금의 남김도 없이 혀로 핥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돌아보니 어머님이 서 계셨지요. "짱아, 니 지금 여기서 뭐하노?" "영식이한테 호빵 얻어묵고 있다 아입니꺼." "니가 거지가? 그기 뭐꼬? 빨리 버리고 집에 가자!" 아마 공장에 갔다 돌아오시던 어머님이 영식이에게 구걸하듯이 호빵을 얻어먹고 있던 저를 보신 모양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어머님은 굳은 얼굴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짱아, 그렇게 호빵이 먹고싶더나?" "응, 호빵 진짜 맛있다!" "그럼, 내일부터 엄마가 사 줄테니까 이제 얻어묵고 그라지 마라." 어머님은 약속처럼 다음날부터 퇴근하실 때면 어김없이 호빵을 하나씩 사오셨습니다. 어떤 날은 팥호빵을, 또 어떤 날은 쑥호빵을 사오셨습니다. 가끔 어머님도 드시라고 드리면 공장에서 많이 먹어 배가 부르다며 항상 저 많이 먹으라 하시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어머님 퇴근하시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 어머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잔업이 있으면 항상 미리 연락을 해 주시는데 이상하더군요. 그래서 동네 어귀의 버스정류장에 나가 어머님이 사오실 호빵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달려오시며 말씀하시더군요. 전화가 왔는데 어머님이 쓰러져서 병원에 가셨다고... 전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막 정신을 차리신 모양이었습니다.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계시던 어머님은 저를 보시더니 괜찮다고, 왜 왔느냐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때 어머님과 같이 공장에 다니시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짱이 엄마, 니 왜 그리 미련하노! 병원에서 니 영양실조란다. 아끼면 얼마나 아낄거라고 맨날 퇴근할 때도 버스 안 타고 걸어다니더만 먹은 것 없이 너무 무리해서 그렇단다." 전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매일 어머님이 어떻게 호빵을 사오시는지...

아마 요즘도 호빵 한 개 가격이 버스비 정도 하는 것 같은데 그때도 호빵 한개 가격이 버스비랑 비슷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어머님께서는 매일 저에게 호빵을 사주기 위해 퇴근하실 때 버스를 타지않고 한 시간을 걸어다니셨던 겁니다. 그리고 보리밥이나마 조금 더 먹게하기 위해 어머님은 거의 끼니를 거르셨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이지만 전 어머님의 사랑에 가슴이 너무나 아프더군요. 철없는 어린 자식 호빵을 사주기 위해 그 고통을 참고 계셨을 어머님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저를 키워주신 어머님 덕에 저도 이제는 장성하여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가끔 어머님을 뵈면 젊은 시절 고생으로 관절이 안 좋으신지 다리가 많이 아프시다고 말씀하셔서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어머님의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아마도 제가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 어머님 은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아무쪼록 어머님 아프지마시고 오래도록 편히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보면서 오늘은 퇴근할 때 따끈한 호빵 한 봉지 사들고 어머님을 찾아 뵈어야겠습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