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質彬彬의 출전은 다름 아닌 論語(논어)다.
文質은 文과質을 말함이니, 形(형)과 實(실), 形式(형식)과 內容(내용), 外華(외화)와 實質(실질), 現象(현상)과 本質(본질) 등의 對語(대어)로 보면 좋을 것 같다.
文은 무늬요, 그러기에 꾸밈이며, 質은 바탕이니, 質이 없으면 文은 거짓이요, 文은 質의 존재 방편인 것이다.
中國 上代의 殷(은)나라는 흰 것을 숭상하여 尙質(상질)했고, 周(주)나라는 붉은 것을 귀히 여기 尙文(상문)함으로서 文質(문질)의 경중을 달리하여, 각각 國家(국가) 指導(지도) 理念(이념)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宮室(궁실)의 衣食住(의식주)는 물론 예악 祭禮(제례)뿐만 아니라 士庶人(사서인)의 생활과 문화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우리들 평상의복으로 비유컨데, 무늬나 색채가 요란한 것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文樣(문양)이 우아한 것을 취하는 이가 있듯이, 이 文質의 문제는, 개개인의 心性(심성)뿐 아니라 그들의 그 家風(가풍)을, 한 사회를 두고 본다면 그 시대 風潮(풍조)나 習俗(습속)을, 나아가 文學(문학)이나 藝術(예술)의 영역에 있어서도 그 形式(형식)과 內容(내용)을 지배해온, 우리 문화의 줄기찬 undercurrent와 같은 것이다.
論語(논어)의 原典(원전)을 살펴보자. 그 雍也篇(옹야편)에,
子曰(자왈) 質勝文則(질승문즉) 野(야)
文勝質則(문승질즉) 史(사)(주 1)
文質彬彬(주 2) 然後(연후) 君子(군자)
라 했으니, 이를 의역해 보면,
質이 文을 이기면 (質이 지나치면) 야비하고,
文이 質을 이기면 浮華(부화) 해진다.
文과 質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야 君子(군자)다.
文과 質이 어느 한편으로 지우치지 않는 中和(중화)의 境界(경계)가 彬彬한 세계요, 그런 人格(인격)을 君子(군자)라 본 것이다.
孔子(공자)와 子桑伯子(자상백자)와의 고사를 소개해 본다.(주 3)
子桑伯子는, 莊子(장자)에도 그 인물이 소개된 사람으로, 평소에 不衣冠而處(불의관이처)했던, 말하자면 잗달은 예절에 구애됨이 없는 老壯派(노장파)의 위인이다.
어느 날 孔子와의 대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두 분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발연히 항의했던 것이다.
孔門의 제자: 어찌 이런 자를 만나십니까.
孔子: 그 사람 바탕은 좋은데 無文함이 탈이라, 文을 좀 갖추라고 타이르고 싶었느니라.
子桑伯子의 제자: 어찌 孔子 같은 자를 만나십니까.
子桑伯子: 그 사람 美質(미질)이긴 한데 文이 너무 번거로워, 그 文을 없애게 하고 싶었느니라.
子桑伯子는, 孔子가 文이 지나침을 못마땅히 여겼고, 孔子는 상대편의 無文함을 애석히 여겼다. 孔子는 文을 가미하려 했는데 반해, 子桑伯子는 孔子의 文을 거세하고 質로 돌아가려는 즉 去文反質(거문반질)의 사상을 주창한 분이다. 한분은 文과 質의 조화를 이상으로 보았으나 또 한분은 文을 극도로 忌諱(기휘)했던 것이다. 文質 어느 편을 중히 여기느냐, 先文而後質(선문이후질)이냐 先質而後文(선질이후문)이냐 하는 문제가 여기 있는 것이다. 환언하면, 文과 質을 어떻게 조화하느냐 하는 문제다.
한 개인에 있어서는, 그 천품이나 후천적 수양에 따라 다르겠으나 대개 前半生은 文勝하고 후반에는 質勝하는 경향이 있고, 남녀를 비교컨덴, 남자보다 여자가 文이 勝하고, 經學家(경학가)는 詞章家(사장가)보다 質이 勝함이 상례이며, 儒家(유가)에 비해 道家(도가)나 禪家(선가)는 거의 無文(무문)이라 하리만큼 質勝(질승)한 편이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사람보다, 그리고 학력이 높은 이들은 낮은 이들보다 文飾(문식)이, 즉, 꾸밈이 많음이 사실일 것이다.
우리 文化史(문화사)를 통틀어 본다면, 上古時代(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의 無文(무문)으로 質勝(질승)했던 것이, 후세에 문명이 발달됨에 이르러서는 역으로 거의 無質한, 無實(무실) 浮華(부화)한 粉飾(분식)의 시대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한다. 孔孟(공맹)과 老壯(노장)만을 살펴보더라도, 簡古(간고)한 論語(논어)에 비하면 孟子(맹자)는 多辯(다변)文勝(문승)이요, 老子(노자)의 그 樸訥(박눌) 質朴(질박)이 壯子에 이르러서는 文으로 傾倒(경도)한 감이 없지 않으니, 그로부터 二千年을 격한 오늘이겠는가.
子桑伯子가 오늘을 다시 본다면 무어라 하실 것인가.
孔夫子께서 再臨(재림)하신다면 천하가 史化(사화)했음을 개탄하실 것이다.
質이 바탕이라면 文은 質의 방편이요 형식이며 그 형상일 뿐이다. 그러나 文이 없이는 質이 그 形을 상실키 마련이니, 文과 質은 不可相無(불가상무)한, 실로 서로 없지 못할 것이로되, 文은 그 속성이 流漫(유만)하여, 質을 해하기 쉬우므로 부단한 절제가 요구되는 것이다.
文과 質의 理想的(이상적) 比率(비율)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古注(고주)의 소위 適均之貌(적균지모)라든가 適宜相雜(적의상잡)이라 했음은 數理的(수리적) 比率(비율)을 뜻함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質이文의 근본이요 文은 質의 枝葉(지엽)일진데, 文이 質을 勝함은 本末(본말)의 顚倒(전도)인지라 당연코 質이文을 勝함이 正理(정리)일 것이다. 소위 適均之貌(적균지모)나 適宜相雜을 適宜質勝으로 보아, 文勝一辺倒(문승일변도)의 현대풍조를 反質(質로 돌아감) 運動(운동)으로 逆轉(역전)함이 바람직한 것이겠다.
假飾(가식)에서 眞率(진솔)로
多辯(다변)에서 寡黙(과묵)으로
奢侈(사치)에서 質朴(질박)으로
外華(외화)에서 內實(내실)로
虛浮(허부)에서 忠誠(충성)으로,
그리하여 文質彬彬(문질빈빈)한 人格(인격)의 陶冶(도야)와 또한 文質(문질)이 彬彬(빈빈)한 人類文化(인류문화)를 이룩함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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