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이 진나라에서 돌아오자 제민왕은 의연히 그를 상국으로 등용하였다. 그리하여 더욱 많은 식객들이 모여들어 그 수효가 삼천을 헤아렸다.
어느날 선비 풍환은 맹상군이 빈객을 후대한다는 말을 듣고 몸에 람루한 옷을 걸치고 짚신을 신고 찾아왔다.
맹상군이 물었다.
"선생은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오셨는데 무엇을 가르쳐 주시렵니까?
풍환이 말했다.
"그대가 선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워낙 가난한 신세인지라 그대에게 의탁하려고 왔소이다"
맹상군이 풍환을 하등숙소에 배치하였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 맹상군이 가신에게 물었다.
"그 손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더냐?"
가신이 대답했다.
"풍선생은 매우 가난하여 칼 한자루밖에 없었는데 그 칼을 튕기며 '장검아 돌아가자! 먹으려 해도 생선이 없구나!' 라고 노래합니다."
맹상군은 풍환을 중등숙사에게 옮기게 하고 끼니마다 생선을 대접케 했다. 그로부터 닷새후에 맹상군이 또
가신에게 물으니 가신이 대답했다.
"풍선생은 여전히 칼을 튕기며 '장검아 돌아가자! 나가려 해도 수레가 없구나!' 하고 노래합니다."
맹상군은 풍환을 상등숙소로 옮기게 하고 출입할 때마다 수레를 타게 하였다. 그로부터 닷새후 맹상군이 다시 가신에게 물으니 가신이 대답했다.
"선생께서는 여전히 칼을 튕기며 '장검아 돌아가자! 집식구를 돌보는 사람이 없구나'하고 노래합니다"
맹상군이 사람을 띄워 풍환의 집을 돌보자 풍환은 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때 맹상군은 식객이 너무 많아 봉읍의 수입으로 손님들을 먹여 살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설읍의 주민들에게 돈을 대부 해주고 그 이자로 식객을 계속 접대하려 하였다. 그러나 한해가 되여도 이자를 받지 못해 언변이 좋은 풍환을 보내어 빚을 독촉하게 하였다. 풍환은 떠날 때
"돌아 올 때 무슨 물건을 사오랍니까?" 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선생의 생각대로 우리 집에 없는 것을 사오도록 하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풍환은 설에 가서 돈을 꾼 사람들을 모두 불러놓고 이자 10만전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술을 빚고 살찐 소를 잡아 놓고 돈을 꾼 모든 사람을 불러 연석을 마련하였다. 술이 거나하게 되였을 때 풍환은 맹상군의 명이라고 하면서 차용증서를 꺼내여 이자를 낼만한 사람과는 의논하여 기한을 정하고 가난해서 이자를 낼수 없는 사람에게는 차용증서를 달라 해서 불태워 버렸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맹상군은 대노하여 풍환을 불러 질책했다.
"빈객을 접대하기 위해 돈을 받으라고하였는데 잔치를 베풀어 차용증서를 채워 버렸으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풍환이 대답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과는 기한을 약속했고 부족한 사람은 그 증서를 보관하고 재촉하더라도 이자만 쌓일 뿐 물수 없습니다. 심히 독촉하면 도망처셔 당신이 빚놀이만 좋아한다는 나쁜 명성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받을수 없는 빈 장부를 태워버림으로써 설땅의 백성을 당신과 친근하게 하고 당신의 명성을 높히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이것이 당신 집에 없는 정의를 사온 것이 됩니다. 당신은 무슨 의혹이 있습니까?
맹상군은 달갑지 않았으나 차용증서를 이미 태워 버렸으므로 마지 못해 "풍선생 수고하셨습니다"고 말했다.
그 때 진소왕은 맹상군이 제나라에 있는 것이 진나라에 불리하다고 여겨 사람을 띄워 요언을 퍼뜨렸다.
"지금 천하사람들은 제나라에 맹상군이 있는 것만 알고 제나라왕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얼마 안되면 맹상군이 임금자리에 오를 수 있다."
제민왕은 요언을 듣고 상국의 인감을 거두어 들이고 맹상군을 설읍으로 쫒아냈다. 식객들은 맹상군이 폐위하자 모두 떠나가 버렸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맹상군은 홀로 뒤따라온 풍환에게 말했다.
"풍선생이 전에 정의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풍환이 말하였다.
"신은 일찍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아(교토삼굴) 미리 죽음을 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아직 굴이 하나뿐이니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하게 주무실 수가 없습니다. 이제 다른 굴을 파실 필요가 있습니다."
풍환은 수레를 타고 곧추 서쪽에 가서 진소왕을 만나 유세하였다.
"천하의 유세객으로서 진나라에 온 사람치고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제나라를 약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 옵니다. 또 제나라를 들어간 유세객은 모두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사옵니다. 이 두나라는 자웅을 가리기 어려운 나라인데 공존할 수 없사옵니다"
진소왕이 무릎을 꿇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진나라가 제나라보다 뒤지지 않게 할 수 있겠소?"
"제나라가 강성한 것은 맹상군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제민왕은 비방을 믿고 그를 폐위시켰사옵니다. 맹상군은제나라왕을 원망하는데다가 제나라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그가 진나라에 오면 진나라는 천하를 제패할 수 있사옵니다."
그 말에 진소왕은 맹상군을 맞아 오라고 사신을 은밀히 파견하였다. 풍환은 작별을 고하고 진나라사신보다 먼제 제나라로 와서 제민왕에게 말했다.
"오늘 천하는 진나라와 제나라만 자웅을 다툴 수 있는데 두 나라중에 인재를 얻는 쪽이 천하를 제패하게 되옵니다. 이제 진나라는 사신을 몰래 파견하여 맹상군을 맞아 가려고 하옵니다. 맹상군이 진나라 상국이 되면 천하는 결국 진나라로 돌아가게 되고 제나라는 위태롭게 되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진나라 사신이 오기전에 먼저 맹상군을 상국으로 복귀시켜 진나라의 모략을 파탄시키지 않사옵니까?"
제민왕은 사람을 국경에 파견하여 살피니 마침 진나라 사신의 수레가 제나라 경내를 들어오고 있었다. 제민왕은 급히 맹상군을 불러서 다시 상국의 자리에 앉혔다. 진나라 사신으 이소문을 듣고 수레를 돌려 돌아갔다.
그 때 풍환이 빈객들을 다시 불러 맞이하려 하자 맹산군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지난날 손님을 좋아하고 그 접대를 등한하지 않았건만 그들은 내가 재상자리에서 물러앉자 모두 나를 저버리고 떠나 누구도 나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이 무슨 면목으로 나를 찾겠습니까? 만약 다시 찾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얼굴에다 침을 밷어 호된 욕을 보이겠습니다."
풍환이 말했다.
"저자는 아침엔 사람이 붐비여도 날이 저물면 한적해집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바라는 물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부귀한 자리엔 따르는 선비가 많고 비천하면 친구가 적은 것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바라건대 종전대로 빈객을 대해줬으면 합니다."
맹상군은 거듭 인사를 드리며 말했다.
"선생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감히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후 풍환은 맹상군에게 제민왕을 설득하여 선왕의 제사기물을 모두 설땅에 옮겨오고 거기에 종묘를 만들어 공양하게 하였다. 제민왕은 맹상군의 제의를 받아들여 설땅에 종묘를 세웠다. 이렇게 되니 제민왕은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설땅을 보호하였는데 그로 인해 설은 다른 나라의 침범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종묘가 세워지자 풍환이 맹상군에게 말했다.
"세굴이 다 만들어졌으니 이젠 베개를 높히 베고 자도 될듯 하옵니다."
오늘 아침 교토삼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깊이 느낀 바가 있어 글을 올려 봅니다.
우리 호랑이족구단식구들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피해갈 굴하나 가지고 계신지요?
고전을 읽고 접하면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또 20대 30대 느끼지 못한 선인들의 지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을 사는 우리들은 당장의 현실때문에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꼭 경제적인 부분의 준비만이 아닌 내 가족, 건강, 이웃 등등 모두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진정으로 베풀며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우리는 수많은 변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안정되었더라고 언제 불행이 닥칠 지 모를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돌아가 쉴 수있는 굴3개 정도는 준비하고 사는 것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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