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拔苗助長(발묘조장)

항상 좋아요. 2009. 7. 8. 16:21

(발묘조장)

 

[字解]

 : 뺄 발
 : 싹 묘
 : 도울 조
 : 긴 장

 

옛날 宋(송)나라에 어떤 어리석은 농부가 살고 있었다.

논에 가보니 자기 논의 벼가 남들보다 키가 작지 않은가.

궁리 끝에 그는 벼의 순을 모조리 뽑아 올려놓았다. 이제 키가 같아졌다.

노인은 만족한 듯이 집에 돌아와 말했다.

“오늘은 참 피곤하군. 벼의 순을 뽑아 올려놓고 왔더니만[予助苗長矣]…”

순간 가족은 깜짝 놀랐다.

이튿날 아들이 급히 가 보았더니 벼는 모두 하얗게 말라죽어 있었다.

孟子는 말한다. “세상에는 대체로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김도 매지 않고 아예 팽개치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그 농부처럼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둘 다 백해무익할 뿐이다.”

 

[意義]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으로, 苗助長(알묘조장)이라고도 한다.

흔히 줄여서 이야기하는 助長이라는 말은 도와서 자라게 하다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짓을 해서 망쳐버리다라는 부정적(否定的) 의미(意味)가 더 강하다.

(주로 좋지 않은 일을) 부추기거나, 또는 마음이 내키도록 자극(刺戟)함을 비유한 말이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欲束則不達(욕속즉부달 : Haste makes waste : 급할수록 천천히)이라는 말이 있다.

 

[出典]

맹자()의 공손추() 상편(上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解義]

孟子(맹자)가 강조한 것은 內面(내면)의 修養(수양)이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착한 性品(성품)을 지니고 있는 만큼 그것을 열심히 갈고 닦으면 누구나 聖人君子(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유명한 性善說(성선설)이다. 그 방법으로 그는 敎育(교육)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직접 행동으로 實踐(실천)해 보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수양한 결과 그의 나이 마흔이 되어서는 일체 외부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위 ‘不動心’(부동심)이 그것이다.

하지만 不動心이 어디 그리 쉬운가. 孟子는 그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浩然之氣(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다.

그것은 腕力(완력)에서 나오는 물리적인 勇氣(용기)가 아니라, 인격의 수양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인 勇氣다.

곧 不義(불의)를 배격하고 正義(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그러면 그 浩然之氣는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그에 의하면 養氣(양기:기를 기름)와 正氣(정기:기를 바르게 함)를 병행하되 서두르면 안 된다고 하면서 제자 公孫丑(공손추)에게 다음과 같은 고사를 들려준다.

 

옛날 宋(송)나라에 어떤 어리석은 농부가 살고 있었다.

논에 가보니 자기 논의 벼가 남들보다 키가 작지 않은가.

궁리 끝에 그는 벼의 순을 모조리 뽑아 올려놓았다. 이제 키가 같아졌다.

노인은 만족한 듯이 집에 돌아와 말했다.

“오늘은 참 피곤하군. 벼의 순을 뽑아 올려놓고 왔더니만[予助苗長矣]…”

순간 가족은 깜짝 놀랐다.

이튿날 아들이 급히 가 보았더니 벼는 모두 하얗게 말라죽어 있었다.

孟子는 말한다. “세상에는 대체로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김도 매지 않고 아예 팽개치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그 농부처럼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둘 다 백해무익할 뿐이다.”

浩然之氣를 아예 포기한 자와 너무 서두르는 자를 함께 경계한 말이라 하겠다.

우리 속담에도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꿰어 못쓴다’는 말이 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인간이 수양을 하는데 있어서랴.

공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欲速則不達(욕속즉부달)’-빨리 가려다 오히려 이르지 못한다.

너무 서두르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번 쯤 음미해도 좋을 것 같다.

 

오늘날 위에서 이야기 한 宋나라 농부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은 다 그 사람을 바보라고 여겨 혀를 찰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 중에서 이 멍청한 사람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정도가 더 심한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그 가운데서 한 가지 예를 들면. 어린 학생들의 영어(英語) 조기교육(早期敎育)이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조기유학을 가 있고, 심지어는 젊은 어머니들이 자기 아들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의 혀와 목을 수술까지 한다고 한다.

그 어린 학생이 앞으로 한국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미국에 이민 가서 미국 사람이 되려고 하면 모르되, 한국에서 살려고 한다면, 우리 말을 완전하게 구사(驅使)할 수 있은 뒤에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린애가 사고의 틀이 다 크기도 전에 외국어를 배운다고 모국어(母國語)를 하지 않으면 사고의 틀이 더 이상 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 조기유학 가서 영어를 배운다면 영어는 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을 잘 모르게 되고 올바른 우리말 구사와 한글 맞춤법의 정확한 표기에 평생 애로를 겪게 된다.

 

외국에 조기 유학가면 처음에는 영어를 잘할 수 있지만. 얼마간의 시기가 지나면 자기 모국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한다.

모국어의 수준이 높지 않으면 외국어의 수준이 더 이상 진척(進陟)이 없다고 한다.
어떤 언어학자 한 분이, 자기 나라말을 확실하게 배운 북경(北京) 사람 가운데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 천여 명과 어릴 때부터 영어와 중국어로 이중언어생활을 하는 홍콩 사람 가운데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 천여 명을 뽑아 어느 쪽이 영어 수준이 높은가를 실험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를 사용해 온 홍콩 사람들의 영어 실력이 훨씬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북경 사람들의 영어 수준이 훨씬 높았다.

자기 나라 말을 확실하게 배워 사고의 틀이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만이 외국어의 수준을 높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어릴 때 조기 유학 해 봐야 결국 일상생활에 쓰이는 간단한 생활어(生活語)를 배울 뿐이고. 학문이나 사상이 담긴 수준 높은 문화어(文化語)는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벼 싹을 뽑아 올리면 벼가 빨리 크는 것이 아니고. 벼 싹이 말라죽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조기 유학을 너무 선호(選好)하다가 한 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자식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