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생활

선생님 간판이 보여요.

항상 좋아요. 2010. 2. 12. 08:12

연금생활수기 공모 은상수상작 - 선생님 간판이 보여요 조무남 연금수급자(전 경기 청성초교)

  35여 년간 정들었던 교직생활을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물러나 허송세월하고 있던 2001년 봄 어느 날, 아내가 가지고 온 ‘사군자반 신설’이란 시간표를 보고 소일삼아 배워 보고 싶어서 나가게 된 것이 복지관과 맺은 인연이었다.


 주 1시간씩 수업 이외는 할 일이 없어 컴퓨터 연습실을 자주 드나들면서 초보자들의 길잡이가 되어 준 것이 컴퓨터반장으로 임명된 계기가 되었고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는데 교장이 반장으로 강등되었다고 농담도 던지는 친구가 있어 한바탕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문제가 생겼다. 컴퓨터를 좀 아는 분이 인터넷에 대한 질문을 해왔는데 문서작성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인터넷은 말만 들었지 실제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컴퓨터 박사라고 불리던 내가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집에 있는 컴퓨터는 인터넷선이 연결되지 않아서 월간지 부록으로 나온 ‘인터넷의 모든 것’이란 책을 찾아 밤새 공부하여 새벽같이 복지관 컴퓨터실로 달려가 ID와 비밀번호를 만들어 점심도 거른 채 꼬박 하루를 공부하다 보니 인터넷에 대한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런데 또 은근히 걱정이 생긴다. 인터넷 이상의 것을 질문하면 또 어쩌지? 더 이상 얼굴 붉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컴퓨터 독학을 결심하고 꼭 배우고 싶었던 사군자도 그만두고 하루 10시간 이상 컴퓨터에 매달렸다.

 ‘개발한 사람이 있는데 이용할 줄 모르면 바보지’라는 생각으로 끈기 있게 공부하여 HTML을 비롯하여 Java Applet. swish 등을 익혀서 그 어려운 홈페이지를 만들어 공개하니 너도 나도 만들어 달라는 부탁으로 20여 명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며 열심히 배워나가던 중 복지관 요청으로 ‘한글반’ 강사직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결심한 대로 컴퓨터의 모든 것의 뿌리를 캐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절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생각을 크게 잘 못한 것 같았다. 어려서 배우지 못해 평생 한이 되어 늦게나마 눈뜬장님을 면해 보려고 나름대로 큰 결심으로 배움의 문을 두드린 노인 분들을 외면하려니 괴롭고 죄 짓는 것 같고 몰인정한 생각이 들어 수락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 국어 읽기 교과서로 주 2일, 1일 2시간씩 국어 공부만 하도록 시간 편성이 되어 있었는데 개인 간의 차가 심하고 기억력이 부족하여 다음날 확인해 보면 효과가 생각한 것보다 매우 저조하였다.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이젠 내가 불안하고 초초해서 견딜 수가 없어 궁리 끝에 교과서 없는 수업으로 방법을 바꾸어 보기로 하였다. 우선 기초 자료를 얻기 위해 자기가 살고 있는 집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쓰도록 해 봤다.

제대로 쓴 분이 몇 분밖에 없었다. 알고는 있어도 쓰는 데는 자신이 없어 보였고 쓰기는커녕 집 주소도 모르는 분도 있었다. 궁리 끝에 노래 부르며 노랫말로 국어 공부를 해보기로 수업방법을 전환했다.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동요를 찾게 했더니 학교 종, 꽃밭에서, 반달, 오빠생각, 봉선화 등 아는 동요들을 참으로 많이 찾아내는 것이었다. 찾아낸 동요를 목록을 만들어 요일별 교과과정을 재편성하여 운영해 나갔다. 쓸 줄은 몰라도 노래는 부를 수 있어 칠판에 1절을 써 놓고 한 시간에 1절 노래 조용히 부르며 쓰기 지도를 해 봤더니 기대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수업 전날 오후에는 내일 배울 노랫말을 한 번도 빼 놓지 않고 칠판에 게시하여 시간 낭비가 없도록 정성들여 그들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동요 노랫말부터 시작하여 많이 부르는 가요,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등을 동요와 섞어서 수업을 진행하니 무겁고 딱딱하던 분위기가 어느새 흥미롭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애국가도 4절까지 노래 부르며 쓸 수 있고 그 유명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도 멋들어지게 낭송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나갔다. 이번에는 하루에 석 줄 일기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어 불안한 모습들이었으나 자기가 표현한 것이 맞았다고 칭찬할 때 기뻐하는 모습에서 마치 천진스런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문자는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도록 향상되었다고 판단되어 병행해서 숫자에 대한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모두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유를 들어 보니 돈 계산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시장에서 물건 사고 거스름돈 주고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숫자도 문자 못지않게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고 주민등록번호도 외워 써야 한다고 설득한 끝에 정규 시간이 끝난 다음 ‘10분 산수’란 과외 시간을 설정하고 수의 조직과 큰 수읽기 대소 구분 가감산 등을 지폐와 동전을 학습 자료로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한 결과 문자 못지않게 학습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흥미롭게 진행되던 수업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선생님 간판이 보여요.”라고 소리치는 분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간판 글씨 다 읽을 수 있어요.”하며 이구동성으로 떠드는 소리가 마치 천사의 합창소리같이 들렸다.

 이제는 길거리의 간판 글씨를 모두 읽는 데 어려움이 없기에 평소 문맹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기쁨과 자신감의 표출인 듯싶었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적셔져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이 모습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맛보는 가슴 벅찬 희열이지!’ 작은 봉사로 많은 분들께 큰 보람을 안겨 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 한 일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그 노고를 인정받아 도봉구청장으로부터 자원봉사 3,000마일리지 인증패와 꽃다발을 받기도 하였다.

  아마도 여기서 그치지 말고 오래오래 열심히 봉사해 달라는 무언의 징표인 듯싶었고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이 결국 자기를 위해 일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교훈도 함께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