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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10명의 제자(공문십철) >

항상 좋아요. 2013. 3. 9. 21:34

< 공자의 10명의 제자(공문십철) >

중국 고대의 성현인 공자(孔子)의 뛰어난 10명의 제자들을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하며, 흔히 사과(四科)십철이라 한다.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에 공자가 진채(陳蔡)의 들판에서 위난을 당하였을 때 함께 있던 제자들 10명의 이름을 들었다.

그는 덕행(德行)에는 1안회(顔回)·2민자건(閔子騫)·3염백우·4중궁(仲弓),

언어에는 5재아(宰我)·6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7염유·8계로(季路),

문학에는 9자유(子游) ·10자하(子夏)가 뛰어나다고 하였다.

또 여기에 나오는 덕행·언어·정사·문학을

사과(四科)라고 한다.

 

덕행이 뛰어난 제자

1. 안회(顔回)

안회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연이며 공자의 수제자로서 공자 제자의 으뜸으로 꼽으며 안자라 존칭하며, 후세에는 아성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가난 속에서 불우한 일생을 마쳤으나, 그 학식이나 인격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회는 나이 32살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에 공자는 "아! 하늘이 나를 망치게 하는구나! 하늘이 나를 망치게 하는구나"(선진편) 하며 탄식을 할 정도로 그를 아꼈던 것이다. 공자의 장탄식은 자한편에서 꽃에 비유하여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2. 민자건(閔子騫)

자건은 그의 자(字)이고 이름은 손(損)으로 공자보다 15세 아래다. 일찍이 노나라 계씨가 자건을 비(費)의 태수로 삼으려고 사신을 보내 오자, 그는 계씨의 무도함을 알고 사신에게 "계씨 대부에게 정중하게 사절한다고 전하시오. 만일 거듭 권유하러 다시 보낸다면 나는 제나라로 가고 말 것입니다."(옹야편)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고결한 사람으로 일뿐만 아니라 효도 또한 남달리 지극했다. 이에 공자도 "민자건이야말로 진정 효자다. 그의 부모 형제를 비난하는 사람이 없으니까."(선진편) 하며 칭찬했다.

 

3. 염백우

이름은 경(耕), 백우는 자(字)다. 공자는 그를 가리켜 덕행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논어'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옹야편 한 군데밖에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문둥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공자가 병문안을 오자 그는 피했다. 그러자 공자는 창문을 통해 그의 손을 잡고 "이럴 수가…… 이것도 천명인가? 이런 사람이 무서운 병에 걸리다니……." 하며 위로했다.

 

4. 중궁

중궁은 염옹의 자(字)다. 그는 덕행이 높고, 노나라의 실권자 계씨 가문의 일을 다 맡아서 처리할 정도로 관리력도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말재주가 없어 사람들에게 약점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공자는 공야장편에서 "말재주는 있어서 무엇에 쓰겠느냐." 하며 중궁의 약점을 덮어주었다.

 

언변으로 뛰어난 제자

 

1. 재아

자는 재아 또는 자아이며,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언변이 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 웅변가의 게으름을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담장은 덧칠을 할 수 없다."고 표현해 재아와 같이 말과 행동이 틀린 인간은 꾸짖을 필요조차도 없다고 지적하였다.

 

2. 자공(賜)

이름은 단목사이며 자공은 그의 자이다. 논어에 자공의 얘기가 제일 많이 나올 정도로 대단히 영리하고 사교에 능해 돈벌이의 천재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공자도 선진편을 통해 "자공은 천운을 기다리지 않고도 부를 누렸는데 그의 슬기로운 판단은 거의 다 적중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안회처럼 道를 즐기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충고를 했다.

 

정사에 뛰어난 제자

1. 염구(염유)

자는 자유이며,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노나라의 계강자 밑에서 벼슬을 하다가 공자의 뜻을 저버리는 바람에 배반자 소리를 듣기도 했다.

 

2. 자로(계로)

3천 명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이채를 띤 제자는 바로 자로였다.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字다. 그는 성격이 곧고 급하며 괄괄해 대처럼 부러지기는 해도 구리처럼 휘지 않는 위인인 동시에 남에게 지기를 싫어해 곧잘 아는 체하다가 공자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자로는 위나라 대부 공리의 가신으로 있을 때, 정변이 일어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전에 이미 공자는 정변 소식을 듣고 자로는 죽었겠구나 하며 예측을 했다. 그의 급한 성격을 공자는 항상 걱정했었기 때문이다.

자로는 이때 창에 목이 반쯤 끊겨 숨지면서도 갓끈이 끊어지자 "군자는 죽을 때 죽더라도 갓을 벗을 수는 없는 법이다"라고 말하면서 갓끈을 똑바로 매고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62세였고, 그의 시체는 무참하게 토막이 나 소금에 절여져 공자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의 곧은 성격과 급한 성격만큼이나 적도 많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얼마 후 위나라의 사자가 소금으로 절인 자로의 시체를 공자 앞에 내놓자 공자는 이것을 보고 대성통곡하면서 집 안에 있는 소금으로 만든 음식물을 모두 쏟아버렸다고 한다.

 

문학에 특출한 제자

1. 자유

성은 언(言). 이름은 언이며, 그는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서 문학적인 소양이 가장 풍부해 일찍이 노나라 무성의 성주가 되어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2: 자하

성은 복, 이름은 상이며 자하는 자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공자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는 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도 문학 방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일인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증거로 팔일편을 보면 된다. 자하는 공자가 세상을 뜬 후 공자의 사상을 널리 전파했고, 나중에 위나라 문후의 스승이 되었으나 아들이 죽자 통곡을 하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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